현 난국을 푸는 열쇠: 소통 정의

중앙선데이, 2025.1.11.

계엄과 탄핵, 대통령 체포를 둘러싼 작금의 혼란을 보면서 두 가지 테마를 제기하고 싶다.

하나는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이 연 유신 시대의 돌진적 근대화의 유산이 돌진적 정치문화의 유령으로 소환된 것이다. 유령 개념은 데리다(JDerrida)에서 취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현 난국을 푸는 열쇠는 하버마스가 주장하는 소통정의에 있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선포는 전형적인 유신 시대 긴급조치의 유령이다. 전 방위에 걸친 민주당의 윤 대통령 압박도 돌진적 정치문화를 재현하는 유령이다. 유령들은 과거로부터 나와 현재를 활보한다. 그리고 서로 싸운다.

이재명 대표의 생각을 추측해보자면, 현 위기의 원인은 윤 대통령의 실정과 망상이고 각료 탄핵이나 예산 삭감등은 민주당의 합당한 반격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12·3 계엄 이전에 민주당이 그 가능성을 공개 거론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사전 경고의 뜻도 있지만, 민주당이 함정을 파놓고 상대를 코너로 밀어붙였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렇게 경고한 함정에 윤 대통령은 빠지고 말았다. 이로써 그는 스스로 몰락하는 길을 택했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은 어떤 선택을 했는가? 나의 해석은 그 역시 민주당을 유사한 함정으로 유인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해 12월 14일의 대국민 담화를 통해 계엄을 대통령의 고유권한으로 옹호하면서 장기전의 메시지를 지지자들에게 보냈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표는 이 행동을 내란의 연장으로 간주했고 이에 상응하여 탄핵 열차의 과속 페달을 밟았다. 이로써 그는 윤 대통령이 파놓은 함정에 빠졌으며 절대적으로 유리한 정국을 지혜롭게 관리하지 못한 채,

고분고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덕수대행을 지난해 12월 28일 전격 탄핵함으로써 정국불안을 가중시킨다는 비난을 자초했다. 아울러 민주당이 통치할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어둡게 만들고 있다.

현 상황을 살피자면, 윤 대통령은 국민의 신뢰를 잃었고 국민의 힘은 탄핵의 엄중한 국면에서 당의 쇄신에 극도로 무력하다. 때문에 민주당의 역할과 책임은 막강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당의 체질이 크게 변질되었다. 당의 반석이라 할 김대중 대통령의 소통과 협치의 정신은 완전히 실종된 채, 돌진적 정치문화가 오늘의 민주당에 이식된 것은 가공할 돌연변이가 아닌가 한다. 더욱이나 1980년대 대학에서 정의와 공정을 외쳤던 정치세대가 대거 수혈된 오늘의

민주당에서 돌진적 정치문화의 유령이 활개 치는 현실이 당혹스럽고, 이런 민주당이 집권했을 경우 그 결과가 사실 두렵기도 하다. 민주당 편에 섰던 많은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근본문제로서 무장한 군부대를 동원하여 국회의 정상적 운영을 막은 윤 대통령의 계엄선포는 명확한 국헌문란이고 내란의 소지가 있는 중대한 범죄다. 아울러 법원이 발부한 체포영장의 집행을 대통령 실 경호처가 막은 것도 법치에 어긋난다. 따라서 헌정 질서를 확립하려면 시시비비를 가려 책임을 묻는 징벌 적 정의가 요청된다.

다른 한편, 좀 더 생각해보면, 계엄이나 내란에 연루된 인사들을 모두 색출하여 처벌하는 것만으로 오늘의 정치 혼란을 과연 극복할 수 있는가? 나는 회의적이다. 대통령 실, 여야 정당, 수사기관들이 각 조직의 법적 근거와 목표를 향해 모든 자원과 수단을 동원하여 앞뒤를 가리지 않고 돌진하는 정치문화가 계속한다면, 국가기관 사이의 충돌을 포함하여 오늘의 파국적 혼란이 재현될 위험이 적지 않다고 본다.

따라서 나는 대한민국을 지키는 방파제, 즉 국민공동체의 복원이 미래를 위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자유로운 시민의 연대로 상상할 수 있는 국민공동체는 정치권의 극심한 분열로 인해 전혀 체감되지 않는다. 1960년 4·19 혁명, 1987년의 민주화 항쟁, 2016년의 촛불 시위에서 국민통합의 에너지가 분출한 적이 있었지만 이를 새로운 정치문화로 정착시키는 정치권의 능력은 매우 저조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민주화 40년의 전통에도 불구하고 속절없이 겪고 있는 위기의 본질이며 탈출구를 못 찾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설상가상으로 우리는 곧 내란죄를 둘러싼 치열한 정치적 공방에 휩싸일 가능성도 있다.

해결이 쉽지 않은 이런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푸는 열쇠는 소통정의에 있고 이를 통한 국민공동체의 복원에 있다. 내란 수사에 연결하여 쉽게 풀어보자면, 상대가 누구이건 간에 자신의 입장이나 경험을 자유롭게 피력하고 이것을 상대의 입장에서 헤아리는 상보성의 원칙이 실현되어야만 국민 분열을 막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만일 반대로 징벌 적 정의를 일방적으로 앞세운다면, 자칫 정복자의 정의로 오인될 위험이 있으며 그러면 분열은 더 깊어지고 상처의 치유도 더 어려워진다.

이 제안은 광복 8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가 추구해야 할 광복의 빛, 즉 규범적 목표를 생각해본 것에 불과하다. 소통정의를 실현하는 구체적인 방법과 절차, 국민공동체 효과 측정 등은 많은 토론을 요구한다. 여야가 현 난국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의지가 있다면, 그 길은 분명히 있다. 그 길을 찾고 여는 데 여야가 대승적으로 협력하기를 권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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