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민이론은 1980년대 중반 민주화의 전환기에 젊고 교육수준이 높으며 민중의 정체성을 획득한 개혁적 중산층을 호명하는 이론으로 등장하였습니다. 이후 2011년에 설립된 공익법인 (재)중민재단은 2015년, 서울시 시민청에서 중민이론 30주년 기념학술대회를 '양극화 시대의 중민: 육성을 듣는다'는 주제로 개최하였습니다. 이어서 2025년 10월 24일에는 '세계적 양극화 시대, 성찰적 시민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40주년 기념학술대회를 서울대 국제협력본부 세미나실에서 개최하여 성황리에 마쳤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독일에서 포닥 박사 후 연구를 하고, 1981년부터 서울대학교에서 강의했어요. 학생들하고 여러 대화를 하면서 제가 1985년에 '중민이론'을 주창하기 시작했습니다.
금년이 40주년이 되는 해예요. 그래서 오늘 <중민이론 40주년 기념학술대회>를 갖게 됐습니다. 이 중민이론이 주창되던 당시의 상황에서 보면 중민의 '중'은 중산층을 뜻해요. 그리고 '민'은 민중을 뜻합니다. 중산층은 근대화 혜택을 상대적으로 받은 층입니다. 그런데 민중은 근대화 혜택을 별로 못 받은, 약간 좀 무산대중 같은 노동자, 농민, 빈민 이런 사람들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많이 썼어요.
그런데 중민이론이라고 하는 것은 근대화의 혜택을 받은 중산층과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던 민중이 더불어 사는, 공존하는 그런 사회를 만들자! 그래서 그걸 주창하는 사람들을 '중민'이라고 우리가 부르게 됐어요. 그 당시에 학생들이, 젊은 학생들이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그걸 제가 받아가지고 '중민'이라고 하는 호명을 만들어서 그런 집단들을 중민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거죠.
우리나라는 말이죠. 국가가 주도하는 산업화가 굉장히 성공적으로 된 나라에요. 경제성장이 엄청나게 일어났습니다. 60년대부터. 경제성장이 되면 중산층이 늘어나게 되죠. 그러니까 80년대에 중산층이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그동안에도 계속해서 대학생들이 중심이 되어가지고 독재 반대라든지, 민주화라든지, 사회개혁이라든지.. 그런 걸 주장하는 운동이 끊임없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세대들이 전부 다 사회로 들어가요. 사회에서 각자 자기 일을 하게 됩니다. 사회 안으로 들어간, 상당히 근대적인 세력들이 많이 늘어나는 거예요. 젊고 학력이 높고 개혁지향적인 그런 세력들이 많이 드러나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런 세력들이 1980년대 민주화 변환기에 침묵하지 않고 거리로 나오게 되고. 그리고 더 나아가서 사회개혁을 주장하고. 또 더 나아가서 기층에 있는 상대적으로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의 권익도 신장되어야 된다는. 그런 어떤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운동이 일어난 거거든요. 이것은 민중하고 대립적인 개념은 아닌데 그 당시에는 민중이냐, 중산층이냐? 사회 변화를 일으키려면 누가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되느냐라고 하는 것이 뜨거운 논쟁거리였어요.
한편에서는 민중이 중심이어야 한다라고 하는 주장이, 급진이론에서 나오고 변혁 운동이 일어나고. 저는 그것만은 아니고, 우리나라 중산층 안에서도 변혁을 요구하고, 기층 민중과 더불어 가려고 하는 중산층이, '깨어 있는 중산층'이 적지 않게 많이 있다. 이 사람들과 더불어 가야 된다. 그래서 중민이론이라는 것을 만들었거든요. 그래서 민중과 중산층이 더불어 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 그게 80년대 상황에서는 가장 중요한 주장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약간은 사회 통합적인 개념이죠. 한편으로는 권력쪽으로 들어가서 정치에 참여하게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에 들어가서 사회 각 조직에서 나름대로 어떤 관성,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새로운 운동, 새로운 가치를 만들려고 하는 그런 운동들이 사회 저변에서 막 올라온 거죠. 그래서 이러한 중민들의 역할에 의해서, 한편으로는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국가가 개혁이 되고 정부가 개혁이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 전체가 좀 더 투명해지고 좀 더 개방적이 되고 이렇게 발전해왔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중민의) 역할이 굉장히 컸다(고 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뜻밖에도 굉장히 광범위한 위기에 처한 거예요. 위험사회라고 부르는데요. 1997년 말부터 외환위기가 닥쳐서 많은 사람들이 해고가 되고 경제적으로 굉장히 큰 파고가 일어났습니다. 굉장히 어려워졌어요. 위험사회가 도래한 겁니다, 본격적으로. 그 위험사회를 우리가 어떻게 헤쳐나갈 것이냐라고 하는 문제가 제기돼요. 그래서 중민이론이 그것에 대응해서 위험사회를 누가 어떻게 관리할 거냐? 한편으로는 정부가 그걸 해야 된다는 의견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위험에 당하는 것은 시민인데 결국 시민의 의견이 중요하지 않느냐? 그래서 시민의 의견을 존중하는 의견과 정부정책을 중요하게 여기는 의견이 팽배해진 거예요.
중민이론의 관점에서는, 위험사회가 아주 심각해지고 있는데 그걸 극복하려고 하면 정부의 노력도 참으로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시민들의 자발적인 운동이 많이 일어나야 된다. 이것이 저희들의 기본 주장이었어요. 거기에 여러 가지 견해가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중민이론이라는 관점에서 본다고 하면, 적어도 적과 동지의 양극적인 분열로 대립되는 것보다는 우리가 공통의 세계를 찾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되고, 그 공통의 세계 속에서 공존을 길을 찾아야 된다. 이러한 가치를 더 발전시키고 그런 의미에서 교육도 하고 연구도 하고 시민활동도 하고. 이런 새로운, 어떤 출발이라고 할까요? 40주년을 맞이해서 우리가 오늘의 암담한 위험사회의 현실에서 어떻게 그걸 넘어갈 수 있는, 공존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 것이냐? 그것의 출발점으로 오늘의 학술대회를 삼아야 되지 않겠느냐, 그렇게 생각합니다.
중민이론이 되려고 하면 학문 자신이 좀 더 깨어나야 됩니다. 오늘날의 암담한 위험사회의 현실에서 중민인 우리가 어떻게 학문을 통해서 사회의 발전에 공헌할 것이냐라고 하는. 약간 공적 지식인의 역할이 학문을 통해서 거듭 조명되어야 되고 발전되어야 됩니다. 그러려면 그걸 이어갈 수 있는 이론이 필요하고 실제 노선이 필요한데, 여러 방안이 있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것은 중민이론이 그걸 잘 제공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